-글로 읽는 영화는 본 영화에 절대적인 빈카소의 시점에서 쓴 리뷰이며, 다소 영화와 맞지 않은 표현들도 들어가 있으니 이점 유의 바랍니다.
우아한 거짓말
시작합니다.
1부.
"천지가 죽었다. 반듯한 옷 입고 가겠다며 아침 내내 교복을 다리던 동생이
유서한장 남기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느 날과 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그날은 유난히 화창한 날씨였다. 바깥에서는 분주히 출근하는 소리,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움직이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학교 가는 아이들의 소리 등 세상의 아침이 시작하는 소리가 집 밖에서 들린다.
2녀 중 언니인 만지는 씻고 나와서는 분주히 얼굴에 스킨로션을 세수하듯 바르고 있었고, 엄마인 현숙은 딸들과 함께 먹을 아침을 만든다. 오늘의 아침 메뉴는 카레. 저녁 늦게까지 마트에서 두부를 파는 현숙은 고단하지만 아빠 없이 자라는 딸들 앞에서는 언제나 든든한 엄마이고 싶다. 음식을 만들다가도 꾸벅꾸벅 졸다가 깨기를 반복. 그런 현숙을 보고는 옅은 미소를 보이는 막내 천지. 천지는 다시 말없이 이상하리만치 아무 표정도 짓지 않고 자신이 입고 갈 교복을 예쁘게 다리고 있다. 여자들 3명밖에 없는 집은 목재로 된 소박한 가구들과 예쁜 액자, 아담한 소파 그리고 예쁘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로 23평 남짓한 아파트에서 단란하게 지내고 있다.
"그거 아직 안 다렸어" 천지 앞에 아직 다리지 못한 언니의 교복 와이셔츠를 가져가는 만지. "한 시간이면 구겨질걸 뭐하러" 라며 바로 입어버린다. 반듯한 거 입고 가면 기분 좋잖아 라며 언니의 셔츠를 바라보는 천지에게 그냥 입겠다며 밥상으로 향한다. 그렇게 세 모녀가 식탁에 앉아 아침밥을 먹기 시작한다. 식탁을 바라보는 만지는 국이라도 끓이지 라며 혼잣말 인척 엄마에게 투정을 부려본다. "계란 이쁘게 부쳐졌다." 예쁘게 미소를 지으며 3개의 계란 중 하나를 밥그릇으로 가져가는 천지를 바라보는 현숙은 예쁘게 말하는 천지에게 웃어 보이며 천지를 닮아보라며 만지에게 한마디 한다. 씩씩한 엄마, 시크한 언니, 그리고 언제나 착하고 살가운 막내 천지, 세 모녀만이 지내는 집은 어느 가정보다 화목해 보였다.
그렇게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세 모녀 중 천지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엄마 나 mp3 사줘." 뜬금없는 엠피쓰리를 사달라는 천지의 말에 먹던 계란을 마저 입에 넣으며 천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현숙은 갑자기 웬 엠피쓰리냐며 묻는다. 다른 애들은 다 갖고 있다며 생일선물 당겨서 사달라는 천지, 이상한 떼를 쓰고 있는 천지에게 이달은 넘기고 사자며 타이르는 현숙이다. 천지의 얼굴은 실망이 가득해 보인다. 만지는 주번, 엄마는 출근. "천지야 미안한데 그냥 그릇 물에 담가놓고 나가" 급하게 엄마는 만지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며 만지를따라 급히 출근길에 나선다. 혼자 남은 천지는 아직 채 다 못 먹은 밥을 먹지 못하고 적막함 속에 다시 눈에 빛을 잃어간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저 다른 친구들 다 가지고 있는 엠피쓰리를 당장 못 갖게 된다는 서운함일까?
마트에 출근한 현숙. 장바구니와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물건들을 보며 바구니에 담고 있다. "맛 좀 보고 가세요! 오늘 1+1 행사하고 있습니다!" 야채 코너에서 두부 쪽을 맡은 현숙은 밝은 얼굴로 고객들을 맞이해보지만 손님들의 방문은 뜸하다. 그런 현숙의 옆자리에서 만두를 팔고 있는 민머리 총각 쪽은 현숙보다 은근히 손님이 있어 보인다. 오늘은 옆자리 총각보다 시원찮은 손님에 괜히 더 큰소리로 행사를 하고 있다며 맛있다고 두부를 파려는데 그때 앞치마 주머니에서 핸드폰 진동소리가 울린다. "나 모자 떠줘. 내 털실로." 전화를 건 사람은 천지였다. 또 뜬금없이 모자를 떠달라는 천지의 말에 현숙은 아침에는 엠피쓰리를 사달라더니 이번엔 왠 모자라며 물어본다. 그때 때마침 없던 손님이 나타나서 찌개용으로 한모 달라고 한다. 급하게 바쁘니 끊는다며 전화를 끊고는 다시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현숙. "죄송합니다 유기농 두부라 좋은 거예요 감사합니다" 손님에게 한모라도 더 팔아 기분이 좋았지만 이내 천지가 걱정된다.
같은 시간 언니인 만지는 친구 미란이와 하교 중이었다. 미란이는 만지의 치마 길이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해서 쳐다보는데 만지는 그런 미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만지야. 그 치마 좀 어떻게 만지작만지작해서 좀 올려봐 답답해 보인다." 결국에는 입을여는 미란이의 말에 한번 슥- 쳐다보더니 시니컬하게 대답하는 만지. 치마가 주인을 잘못 만났다며 곧 폭발하겠다고 되받아친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천지와 미란의 동생 미라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미란이의 동생 미라와 천지가 둘이 같은 반이라는 미란의 말에 만지는 미란이를 본다. 미라는 천지 얘기를 한다는데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는 미란. 그때 울리는 휴대폰. 현숙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천지가 사달라는 게 엠피쓰리 플레이어지? 종류가 많네" 아무래도 천지가 자꾸 신경쓰여 결국 현숙은 일하다가 짬 내서 천지에게 엠피쓰리를 사 주기 위해 엠피쓰리 코너에서 기웃거린다. 사지 말라는 만지의 말에 천지의 목소리가 걸린다며 평소에 뭘 사달라고 안 하는 천지가 눈에 밟히는지 집에 가서 무엇으로 사야 할지 물어보라는 현숙에 말에 만지는 귀찮은 목소리로 학원을 가야 한다며 끊어버린다. 그래도 만지도 천지가 신경 쓰였는지 전화를 해본다. 한편 천지는 집이었다.
천지는 책상에서 울리는 핸드폰에 손을 가져가 대려다 빠르게 끊기는 통화음에 한참을 망설이더니 핸드폰이 아닌 옆에 놓여있는 빨간 목도리를 집어 든다. 자기 방 천장에 목도리를 매다는 천지는 쭈그려 앉은 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따뜻한 색깔이 들어오는 오후, 그해 춘추복을 입던 계절, 천지는 세상을 떠났다.
"천지 아빠, 천지 만나면 왜 그랬느냐고 묻지 마. 그냥 꼭 안아줘. 나쁜 년. 잘 가라 이년아" 맑은 강물에 천지를 떠나보내는 현숙과 만지. 만지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지 조그마한 상자를 들고 엄마가 들고 있는 천지의 사진을 바라본다. 엄마는 가슴이 찢어진다. 이미 많이 울었는지 부운 눈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현숙은 그렇게 천지를 떠나보내고 하늘을 바라본다. 먼저 간 남편과 천지는 만났을까? 시냇물은 비통한 두 모녀의 가슴도 모른 채 예쁜 소리를 내며 흐른다.
"아무리 애가 죽으면 봉분 대신 돌을 쌓는다지만 그렇게 험하게들 말하면 안 되지, 어디서 귀한 딸을 잡귀 취급해, 이 망할 여편네!!"
결국 집주인에게서 집을 빼 달라는 말을 들은 현숙은 이사를 하게 된다. 두모녀만 남은 적막함에 어색해지기만 할 뿐, 이삿짐 차에 함께 실려가는 둘 사이에 대화는 딱히 없었다. 현숙이 급한 대로 잡은 아파트의 이름은 '초원 아파트' 괜스레 시원시원하게 저희 모녀 이사 왔습니다 라며 요란하게 지나다니는 주민들에게 인사한다. "구석구석 사생활이라고는 있을 수가 없네" 집에서 한참 가구와 박스들을 옮기던 만지는 이 좁은 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어디서 올라오는지, 퀴퀴한 냄새에 엄마를 말없이 쳐다본다. 아무리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겨봐도 영 위치가 안 선다. 아무래도 가져온 가구들 몇 개를 내다 버려야 하는 상황. 만지의 책상을 결국 빼고 천지의 앉은뱅이책상을 쓰기로 한다. 그때 베란다를 청소하던 엄마는 작은 보일러실 문을 열어보는데 찍찍-소리와 함께 쥐들이 나온다. 비명을 지르며 만지와 현숙은 집 밖으로 뛰쳐나왔고, 그 앞을 지나가려는 장발을 하고선 칙칙한 분위기의 청년을 보고 한번 더 놀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청년의 이름은 추상박, 옆집에 산다고 한다.
두모녀를 보고서는 자기가 쥐를 잡아보겠다며 안으로 들어서는데 들어간 지 몇 초도 되지 않고서는 집 밖으로 뛰쳐나오는 추상박. 쥐의 크기가 너무 크다며 다른 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현숙은 괜히 기대했다며 결국 만원짜리 한 장을 경비 아저씨에게 쥐어주며 쥐를 잡아달라 부탁한다. 하지만 경비 아저씨가 잡은 쥐는 두 마리일 뿐 한 마리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새끼만 잡으면 뭐해요- 만원이나 받아놓고 어미쥐는 어쩌라고." 앞으로 살 집이 걱정이 되는 두 모녀, 만지는 가출할 거 같다 하고 현숙은 쉬는 날 자진해서 반납할 것 같다며 문밖에 서서 집을 바라본다.
[ - 띠링] 대충 짐 정리를 해놓고 밥을 먹기 위해 두 모녀가 찾은 곳은 아파트 앞에 위치하고 있는 짜장면집. 손님 오는 종소리에 문쪽을 바라보는 가게 주인인 김정형은 현숙을 보고는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같은 아파트로 이사 왔어요 종종 보겠네요" 현숙은 정형을 보지도 않고 메뉴판을 바라보며 정형에게 인사를 건넨다. 정형은 현숙이 영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정형의 딸인 화연의 반에 죽은 천지의 일을 들었다. 그리고 천지가 죽기전 현숙과 정형은 화연이와 천지때문에 마주한 적 있었다.
그날 저녁 이사하고 난 집에서 처음 잠을 청하려는 현숙과 만지. 방 한 칸짜리 좁아진 집에서 결국, 같은 방에서 함께 잠을 자게 된다. 하지만 만지는 쉽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천지가 떠난 이유가 궁금하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밝기만 했던 천지는 무엇을 원망했기에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다음날 아침 천지의 사물함 앞에서 잠긴 자물쇠를 만지작 거리는 여자아이. 같은 반 학생이었다. 꽤나 잘 나간다는 일진 무리에 속해있던 아이는 짙은 화장과 옅은 웨이브 머리를 하고서는 한 손에는 체육복을 들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이선생. 뭐하냐는 이선생의 말에 여학생은 이천지한테 빌렸다며 체육복을 내보인다. 언제 빌렸냐며 묻는 이선생의 말에 3달 전에 빌렸다고 한다. 그 아이의 말에 놀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선생의 말에 달란 말이 없어서 못줬다며 이선생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체육복밖에 안 빌렸어요. 필요하면 지가 찾으러 올 줄 알았다고요. 아 씨 x 왜 죽어가지고" 어이없을 정도로 당당하며 되려 작은 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여학생의 말에 한소리 하려는 이선생, 그때 옆으로 가방이 날아와 여학생을 맞춘다.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시선을 향한 곳엔 만지가 분노에 찬 눈으로 여학생을 노려고 있다. 결국 학생부 임실에 오게 된 만지와 여학생 그리고 이선생은 천지의 이야기를 여학생을 통해서 듣게 된다. 누가 봐도 일진인 여학생이 어떻게 천지의 체육복을 빌리게 되었는지. "화연이가 나랑 이천지 체격 비슷하다고 걔가 가져다줬어요. 화연이랑 이천지 단짝이에요. 화연이만 알지 천지는 잘 몰라요"
그렇게 상담이 끝나고 만지는 시원찮은 여학생의 말에 뭔가 더 있을 것만 같았는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결국 천지의 반에 찾아가게 된다. 반안에 들어서는 만지의 등장에 반 학생들은 만지를 바라본다. 옆 여고에서 무슨 일로 중학교에 있는 반에 찾아온 건지 조용해지는 반 아이들. 만지는 국화꽃이 놓여 있는 천지의 자리를 단번에 찾아낸다. "나 천지 언니야. 냄새 한 번 더럽게 진하네" 이내 숙연해지는 반 분위기. "안녕하세요 언니." 만지의 목소리에 책상에 엎드려있던 화연은 고개를 들어 만지에게 인사를 건넨다. 만지 또한 화연을 알아보고 뜻 모를 미소를 날리며 학교 끝나고 잠깐 보자고 한다. 만지와 화연은 이미 예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다. 천지가 떠나기 전 언젠가 학교 앞 분식집 앞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천지 언니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천지 친구 화연이에요. 언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돈까스 사주세요" 유난히 밝게 인사하는 화연을 보며 이렇게 밝은 친구가 천지에게 있었구나 라며 생각하는 만지. 하지만 천지는 화연의 말에 다급하게 안 사줘도 된다며 낮은 목소리로 말린다. 만지는 화연과 천지를 번갈아보며 상반된 분위기를 갖고 있는 둘이 친구라는 게 귀엽기만 했다. "돈까스는 돈이 안돼서 안되고, 아줌마 떡볶이 2인분이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던 그날의 기억엔 지금생각해보니 확실히 천지가 이상했다. 분식집 밖으로 잠깐 통화하러 간 화영을 한번 보더니 만지에게 시선을 옮기는 천지가 말했다. "쟤 어때?"
과거를 회상하던 만지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학교가 끝나고, 화연과 다시 그날 천지와 함께 먹었던 분식집으로 왔다. 식탁엔 돈까스가 놓여있다. 확실히 꽤나 밝고 명랑한 첫인상을 갖고 있던 화연이 아닌 어쩐지 안절부절못하고 침울한 느낌의 화연이었다. 그런 화연에게 말을 건네는 만지. "천지랑 단짝이었다며, 많이 속상했겠네?" 화영은 만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대답을 하려 입을 연다. "초딩때부터 친구였던 거지 단짝은 아니에요. 천지 죽은 날에 반애들이 뭐라 말했는지 모르지만, 수행평가 때 천지가 좀 화나 보였어요." 그렇게 화영은 과거를 회상한다.
수업시간 천지의 발표시간이었다. "조잡한 말이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혹시 예비 살인자는 아닙니까?" 선입견에 대한 발표였다. 만지는 화연을 바라보며 발표를 끝마쳤다. 천지의 눈에는 원망과 슬픔이 가득했다. 그렇게 모든 수업이 끝나고 빠르게 집을 향하는 천지에게 미안하다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천지는 그런 화연이 질리기라도 한 듯 무시하고 집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향한다. 화영의 사과를 뒤에서 지켜보던 다른 반 친구들은 혼자 남은 화영에게 다가가 사과하지 말라며 천지를 노려본다.
"천지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내가 너무 몰라줬구나 "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천지의 말을 이어갔던 화연의 눈을 바라보는 만지는 뭔가 재밌기라도 하듯 말을 자른다. "속상하다고 물었을 뿐인데 답이 꽤 길다? 너희들 요즘 mp3다 있지, 천지가 mp3 사달라고 떼쓰다 갔거든. 왜 안 먹니?" 그렇게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하던 둘은 분식집을 나와 아파트 단지 내 까지 함께 걸어간다. 화연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화연은 그런 분위기에 괜스레 밝은 분위기를 내보이며 이런저런 말을 만지에게 건넨다. 자신의 부모님 가게인 짜장면집 '보신각'이 빨리 망해야 이사를 간다는 둥 만다는 둥 말이 이리 튀고 저리 튀며 쉼 없이 떠들어댈 때 만지는 다시 한번 화연의 말을 잘라낸다. "너 말없이 그냥 가는 거 못하지. 침묵 불안하지."
그런 만지의 말에 화영은 만지의 눈을 바라본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얻어먹고 가만히 있으면 건방져 보일까 봐 언니 기분 좋으라고 조잘거린 건데. 천지가 언니 쿨하다더니, 정말 쿨하네요. 언니한테 말 함부로 못한다고 했던 거 같기도 하고..." 화연은 사람 좋은 미소의 마무리로 만지에게 한방 먹였다는 듯 먼저 발걸음을 앞선다. 천지의 입에서 자신이 그런 언니였나 라며 화연의 말에 흔들리는 만지는 최대한 시니컬한 표정으로 화연의 뒤를 따라나선다. "동생 죽고 쿨한 게 쿨한 거냐, 등신이지. 하긴, 이제 시간도 지났으니까 얘기해도 되긴 하지. 유서도 좀 찾아보고, 유서가 없긴 왜 없겠니. 찾아보질 않은 거지. 이제 슬슬 시작해보든가, 말든가" 화영을 보며 씩 웃어 보이고는 앞서가는 만지. 화연은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한편 아직 마트에서 일을 하고 있는 현숙은 여전히 시식만 하고 떠나는 손님들을 잡아보려 애쓴다. 아무래도 오늘은 거의 꽁칠 것 같다는 예감에 기분이 썩 좋지 않는다. 밥이나 먹고 와야겠다며 옆 총각한테 시식대 좀 맡아달라 부탁하고 푸드코너에 줄곧 가던 국수네로 향하는 현숙 "얼른 국물로 많이 좀 줘 곱빼기" 쉬는 시간이 어정쩡해 급하게 먹고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현숙은 마트 일을 하며 평소에 친분이 두터운 동료 국수에게 국수를 부탁한다. 빠르게 나오는 곱빼기 국수를 허겁지겁 한입 들어는데, 갑자기 먹다 말고 국수 그릇에 눈을 떼지 못한다. 생기 넘치는 마트에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그 안에서 배고프다며 국수를 시킨 현숙은 자신만이 들리는 이명으로 국수를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는 결국 눈물을 쏟아내는데, 앞에서 야채를 손질하던 국수가 현숙을 바라보고 안쓰럽게 쳐다본다 "두부야 와- 퍼뜩 무라" 걱정스레 입을 여는 국수는 두부의 눈치를 살핀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국수구릇에 눈을 못떼는 현숙은 울렁이는 마음을 정리하고 입을 연다. "뱃속에서 낳은 자식 보내 놓고, 곱빼기로 국수 처먹고 앉아있다 생각하니까 어이가 없는 게... 또 그러고 산다 내가" 목울대는 울리고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눈물에 결국 티슈를 뽑아 닦아내는 현숙. 딸을 보낸 지 얼마 안 된 현숙은 열심히 살아보려 해도 아직까지도 틈틈이 올라오는 천지 생각에, 만지 몰래 눈물을 훔친다. 다시 기계적으로 국수를 입안으로 밀어 넣는 현숙은, 지금 천지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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