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술집 리뷰는 CoV19 방역절칙을 확실히 지키며 진행됐음을 밝힙니다.
"열두평 딱 열두평만 한 크기에 위로를 마시다."
부산에서 친구가 놀러 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터라 기분을 좀 내볼까 하며 씻고 밖으로 향했다. 친구에게 저번부터 꼭 한 번은 소개해주고 싶은 술집이 있다며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곳은 12평 여전히 따뜻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이곳을 발견한지는 꽤나 오랜 시간 전이었다.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터라 하나부터 열까지가 어렵고 힘들어 일이 끝난 후는 무조건 반주식으로 밥이 될만한 안주 하나 술한병에 위로를 받았었다. 동두천에는 꽤나 훌륭한 술집 겸 식당들이 많이 있지만 사실 혼술러들에게는 그리 친절한 술집들은 많이 없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함께 부담스러울 정도로 즐거운 사람들 사이에 꾸역꾸역 혼술을 즐기던 나는 그날도 역시 힘든 직장을 벗어나 집으로 들어가기 전 나만의 위로를 달래려 술집 골목을 향했다. 여전히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오늘은 그냥 집으로 들어갈까 싶어 고민하던 차, 친구로부터 이곳을 한번 가보라며 소개받은 적이 있던 12평을 기억해냈다. 그 친구는 술도 먹지 않으면서 혼술을 즐기는 나를 위해 지나가다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며 연락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그곳은 전철역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 내가 자주 다니던 길에 위치해있었다. 바깥에서 본 열두평은 정말 딱 열두평정도 되는 크기에 아담한 술집이었다. 딱 봐도 따뜻한 분위기에 조용한 느낌이 들어 밖에서 쭈뼛쭈뼛 가게 안을 보고 있었는데 가게 안에서 열심히 음식을 만들던 젊은 사장님과 눈이 마주첬다. 들어와도 괜찮다는 듯이 사람 좋은 미소로 목례를 하는 사장님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혼자 왔는데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코트를 입을 계절에 황급히 몸을 녹이려 안을 들어왔는데 밖에서 보던 분위기와 또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안쪽 자리에 앉아 겉옷을 내려놓았다. 곧이어 나를 맞이해준 사장님이 아닌, 다른 사장님께서 메뉴판을 가지고 오셨다. 인상이 굉장히 진하고 잘생기셨길래 여기는 얼굴로 장사하나 싶었다. 실례될 수도 있지만 바보 같은 상상을 했다. '두 사장님을 동물로 치자면 양 씨와 늑대 씨 정도려나?' 고개를 휘젓고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가게가 안정화가 되면서 이런저런 새로운 메뉴들이 생겨 메뉴판의 장수가 늘어났지만 그때는 한 장짜리 간단한 메뉴들이 있었다. 빳빳한 메뉴가 구겨질새라 손은 대지 못하고 눈으로 읽는데 술안주 메뉴뿐만이 아닌 밥으로도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이 가운데 정렬로 쓰여 있었다. 그중 제일 무난해 보이는 명란 크림 리조또와 참이슬을 시켰다. (지금은 최애가 되어, 갈 때마다 시켜먹는다) 그렇게 주문을 하고 그제야 가게를 한번 쓱 둘러보았다. 노란빛이 감도는 전구색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 열두 평에는 제일 눈에 들어온 게 옛날 할머니 집에나 있을법한 괘종시계였고 그 옆의 선반에는 앤티크 하면서도 클래식한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벽 쪽에는 과감히 아무런 장식을 해놓지 않았다. 또 오픈형 주방으로 주방 벽엔 특별히 타일로 벽지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었고, 주방 앞에 바 테이블도 준비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총느낌을 설명하자면 심플함속에 클래식이 잘 녹아있어, 아늑한 공간에서 조용히 술을 한잔 먹을 수 있는 그런 술집이다. 음악 또한 분위기 있게 은은하게 흘러나와 사람들의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늘 하루의 노곤, 아니면 특별한 인연들을 위한 느낌으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게를 둘러보며 따뜻함을 느끼고 있을 때 술이 먼저 나왔다. 술과 함께 곁들여 드시라며 기본 안주로 소시지가 문어모양으로 예쁘게 잘려 함께 나왔다. 그렇게 혼술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본다.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를 켜서 좋아하는 공포 콘텐츠들을 보며 술 한 모금을 입에 넣었다. 크- 라며 오랜만에 느끼는 아늑한 기분에 행복해하고 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양 사장님께서 내가 시킨 메뉴 명란 크림 리조또를 들고 오셨다.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기분 좋은 미소도 잊지 않으시는 양 사장님에게 감사하다며 짧게 인사를 드리고 리조또를 봤는데 헉하고 어떡하나 싶었다.
양이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이 나와서는 오늘 취해보라고 많이 주신건가 싶었다. 가격만큼이나 적당히 나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많이 주시면 너무 감사하게 싹싹 긁어먹어보겠습니다 하고 한 병이 두병이 되어버렸다지. 그렇게 나만의 혼술 집들 중 일등이 되어버린 열두평에 자주 혼술 하러 가는 단골이 되었다. 사실 동두천엔 혼술러들이 많지 않아 가게에서 혼술을 자주 하던 나를 보고는 두 사장님 중 한 명인 늑대 사장님께서 나를 알아보셨다고 한다. "00야! 너 맞지? 나 00야" 알고 보니 중학교를 같이 나온 동창이었다. 어엿하게 어른이 된 나와 늑대 사장님은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나중에는 와인까지 들여와 특별한 날이나 괜히 분위기 잡고 싶을 때는 로제 와인을 시켜본다. 적당히 씁쓸하고 적당히 단, 내 최애 와인.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리뷰를 해보리라.
"오랜만에 오셨네요!" 다시 찾은 열두평, cov19로 인해 자주 찾아가지 못해 내심 아쉬웠었는데 친구 덕에 열두평을 가보았다.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반겨주시는 양 사장님과 그 옆에서 조리를 돕던 늑대 사장님의 짧은 인사에 손인사를 하며 친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이 몇 없는 열두평에는 이미 사람들이 분위기에 취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바 테이블에 앉기로 한다.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도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터라 술집이라면 굳이 가기 싫어해서 억지로 끌고 왔지만 휘둥그레진 눈으로 기분 좋게 겉옷을 벗었다. 나는 역시나 명란 크림 리조또를 시켰고 친구는 토마토 스튜를 먹고 싶어 해 두 가지의 메뉴를 사장님들께 부탁드렸다. 술은 진로를 선택했다. "00아 요즘 가게 어때? 배달도 시작하는 거 같더라!" 열심히 야채를 다듬던 늑대 사장님께 안부를 물었다. "배달 덕분에 숨 쉴 곳이 생겼지." 요즘 cov19에 가게 경영에 힘이 들까 없어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잘 해나 가는듯해 보였다. 내 우울과 좋은 추억을 담당하는 열두 평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이라도 하고 싶지 않다. "앞서 메뉴 시킨 손님들이 있어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분주히 음식을 만드시던 양 사장님께서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친구와 나는 술을 먼저 먹기로 한다.
부산 친구를 짧게 소개하자면 예전에 자주 가던 국밥집 사장님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음식을 배워오고 해왔다고 한다. 실제로 친구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어봤는데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주문하신 메뉴들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앞에서 바로 만들고 바로 건네받은 음식에서 향긋한 냄새가 나왔다. 예쁘게 올라간 명란젓을 마구 휘저어 친구에게 맛보라 했다. 괜히 긴장하게 만드는 친구의 눈빛엔 다행히 너무 맛있다며 그렇게 소주 2병 뚝딱 하게 됐다. 술 마시러 와서 거의 밥만 먹고 일어난 기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다음에 자기 놀러 오면 꼭 다시 데려와달라며 만족해하길래 나도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저번에 열두평 리뷰 글을 썼는데ㅜ 어쩌다가 지워져버려서 다시씁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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