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술집 리뷰는 co19 방역절칙을 확실히 지키며 진행됐음을 밝힙니다.
"그해 마지막 날 푸른색의 네모난 사각형."
코로나 여파로 일자리마저 못 나가게 된 나는 백수나 마찬가지이다. 1월 3일부터 일자리가 다시 열린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다는 대표님들의 말에 나는 괜스레 손에 둘러져있는 깁스에 짜증이 났다. 그해의 마지막 날 31일, 방구석에서 크레이지 아케이드나 하고 있을 꼬락서니를 보니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게 대뜸 서글퍼졌다. 이대로라면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을까, 내일부터면 스무 살의 끝자락에 간신히 걸터져 있는 나이일 텐데 내가 과연 내년에는 잘해나갈 수 있을까 싶은 암울한 생각만 났다. 아무 생각 없이 술이나 퍼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 때마침 울리는 카톡 소리에 폰을 열어보니 우울 고물상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소단에게서부터 연락이 왔다. 술 먹자는 얘기였다. 역시 이렇게 타이밍 좋게 통할 수가 있을까 싶어 우리 둘은 초저녁때 만나 술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저 멀리 서울에서부터 동두천까지 행차하시는 소단과는 2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이다. 소단과의 인연을 짧게 얘기하자면 사실 소단은 나의 고객이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우울을 어떻게든 좋게 풀고 싶어 찾아온 그녀는 딱히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다른 고객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저만치 떨어져 가히 '찌그러져있다'라고 생각할 만큼 벽에 딱 붙은 상태로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 써주지 말라는 무언의 무언가를 표시하고 있었기에 다가가기는 많이 힘들었다. 또, 언젠가 회식자리에서 만난 소단은 술을 딱히 잘 마시는 타입이 아니었는지 맥주 한잔을 먹고서는 취해서 비틀거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술이 들어가니 취기가 올랐는지 평소 말이 없던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고 나중에는 회식 때마다 술이 늘었는지 꽤나 긴 시간 동안 함께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말이 잘 통하던 소단과 나는 결국 술친구가 되었고 또, 우울 친구로서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우울 선배이자 후배가 되었다.
"소단! 이게 얼마만이야! 빨리 가자" 지행역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소단은 다이소 안에 있는 새해 다이어리 코너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무방비의 소단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었다. 역시나 세상 최고의 리액션으로 가히 팝핀의 가까운 경기를 일으키는 소단에 흡족한 표정을 내보이며 술집 골목 쪽으로 안내했다. 딱히 어디로 모셔야지 라며 생각해 둔 곳이 없었다. 대부분 이번 연도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문이 닫혀있었다. 그러다 생각난 곳이 무드 앤 무드. 가끔 동두천 토박이 친구들과 함께 갔던 그곳이 생각났다. 내 기억에 맞으면 푸른색의 독특한 분위기를 내던 술집으로 소단이라면 이곳이 마음에 들것이라며 자신 있게 안내했다. 혹시나 문이 닫혀있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열려있었다. 우리는 창가 쪽으로 자리한 곳에 옷을 내려놓으며 주문을 기다렸다. 곧이어 사장님?(아르바이트생이신가?)께서 메뉴판을 들고 나오셨다. 이미 우리는 집에서 밥을 먹고 나온 터에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 간단한 안주에 따악 한잔씩만 하기로 하고서는 제일 무난한 메뉴 감자튀김과 생맥주, 그리고 참이슬 한 병을 시켰다. 그제야 주변 인테리어에 눈을 굴려본다. 역시나 푸른색의 독특한 분위기. 어두운 조명, 사진이나 포스터라도 걸려 있어야 할 법도 한 넓은 벽은 과감히 아무것도 꾸미지 않았고, 오로지 하나의 조명으로 깔끔함을 포인트로 잡아냈다. 이곳 역시나 오픈형 주방으로 주방 바깥쪽 선반들에는 여러 가지 색깔들의 예쁜 술병들이 나열되어있었다. 주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불빛이 그 술병들을 반사시켜 오묘하고도 예쁜 색깔들의 조명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띠는 이유가 아마도 넓은 창가 밖으로 흘러들어오는 다른 맞은편 가게들의 네온사인으로 무드 앤 무드의 조명이 왜 어두운지 알 것만 같았다.
그 네온사인들 덕분에 이렇게 오묘한 푸른색,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연출하게 내버려 둔 걸 지도... 딱히 전체적인 느낌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어느 한 작업실의 늦은 시간에 조명하나 켜놓고 조촐하게 직원들끼리 한잔하는 그런 편안한 느낌. 나는 조심스레 소단의 눈치를 뒤늦게 살폈다. 다행히도 소단 역시 미간을 올리며 좋다라며 연신 특유의 분위기에 취해간다.
그렇게 감탄하고 있을 새 술이 먼저 나왔다. 내 자리엔 소주, 소단의 자리엔 생맥주. 소단은 맥주까지 마음에 든다며 짠을 하기 위해 맥주잔을 들었다. 거의 끝까지 다 차여있는 맥주의 양을 보고는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짠을 치며 각자의 입에 알코올이 들어간다. 크으- 라며 괜스레 소리내어 입을 닦아본다. 그간 어떻게 지냈냐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지만 역시나 소단과 나는 딱히 그렇다 할 안부가 없었다. 나는 부산에서 친구가 놀러 와서 열두 평과 카라반을 가보았다는 얘기, 소단은 가족이 끊어준 헬스에 다녀보다가 co19 여파로 결국 집에서 피티 선생님이 알려주는 식단과 홈트레이닝을 하고 있다는 얘기. 그래도 한 달 동안 뭐라도 했다며 최강 우울러 들은 웃어 보인다. "아 맞다 소단, 소설 쓰는 건 어디까지 썼어?" 문득 소단이 쓰고 있던 소설이 궁금해졌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궁금해할 줄 알았다며 주머니를 뒤적이다 무언가를 건네준다. 사탕 봉지에 예쁘게 포장된 usb였다. 이게 무엇이냐며 물었더니 그 안에 소설이 들어있다며 완결 났다는 것이다. 누가 요즘 usb로 자료를 주냐며 고맙게 받았다.
자기만의 방식이라며 웃어 보이는 소단. 저번에 보내준 소설의 페이지수가 20페이지였는데 몇 페이지냐고 물어보았다. "80페이지! 관두고 싶었는데 쓰는 동안 재밌었어." 80 페이지면 꽤나 두꺼운 책정도는 되겠다며 언제 이걸 다 썼는지 놀랐다. 저번에 소설을 쓰고 있다며 맛보기로 20 페이 정도의 분량을 건네준 적이 있었다. 꽤나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80페이지라니, 끈기 하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할 참이었다. "안주 나왔습니다" 언제 옆으로 왔는지 모를 사장님?(아르바이트생이신가)께서 밝은 목소리로 감자튀김을 내어 주셨는데 양을 보고 까무러쳤다. 아니 이렇게 양이 많을 수가... 소단과 나는 집에서 밥을 먹고 나왔기 때문에 딱히 안주를 많이 안 먹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감자튀김을 시켰던 터라 양을 보고는 오늘 제정신으로 집에 가긴 글렀다면서 소단은 맥주를 한잔 더 시켰더랬지. 감자튀김의 중심에는 사람 모양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는 남자와 여자의 얼굴 감자튀김이 있었다. 세상에 이불이라도 덮어주고 싶은 비주얼에 귀여워서 먹을 수나 있을까 했는데 곧바로 그 감자튀김의 눈을 젓가락으로 쑤셔버리는 소단.
푸른색의 무드 앤 무드에서 주는 특유의 분위기와 음식의 질에 한껏 기분이 오른 나는 먹던 참이슬 한 병을 다 먹고 안 먹어본 소주를 먹어보고 싶다며 '한라산'을 시켰다. 한때 제주도에서 산 적이 있어서 제주도술이 한라산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장님께서는 한라산보다는 차라리 청춘이나 다른 소주를 권하셨었지만 먹어보고 싶은 내 오기에 실패를 맛보았다. 그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한라산을 신나게 흔들어 한잔 따라 시음하듯 입안으로 넣었는데. 크으 소리가 절로 나오게 화한 맛이 났다. 이건 정말 병원에서 쓰는 소독용 알코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찔한 맛에 내가 취한 것일까 하며 조금 남아있던 참이슬을 다시 입에 넣어보았더니, 세상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한라산은 조금 더 인생의 쓴맛을 느끼고 난 후 먼 미래에 다시 도전해보리라. 안주의 양 덕분에 소단은 생맥주 5잔, 나는 소주 3병 이렇게 얼큰하게 취하고서야 집에 돌아갔다. 이번 연도의 마지막을 함께한 푸른색의 무드 앤 무드. 다음에는 다른 안주로 묘한 위로에 취해야겠다.
store.naver.com/restaurants/detail?id=1475371934
mnm : 네이버
리뷰 2
store.naver.com
'빈카소 보고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알약 2021.02.10.수요일.취중일기 (0) | 2021.02.11 |
---|---|
빈카소 보고서 "인생술집 12평" (0) | 2021.01.04 |
빈카소 보고서 "첫 카라반" (0) | 2020.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