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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벨 2화

빈카소 2022. 2. 6. 22:11

 

 

점점 추워지는 날씨에 팔짱을 끼고 병원 밖을 나가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 흩날리는 담배연기에 눈이 아파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빠진다.

 

 

 

 

“엄마 팅커벨은 정말로 있어요!”

 

 

 

 

10평 남짓한 반지하 원룸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그의 딸로보이는 4살 된 여자아이가 있다.

 

 

 

 

그들의 보금자리는 썩 청결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고요한 공기에 이렇다할 소리를 내줄 티비조차 없었다.

 

 

 

 

“안 자니? 어서 이불안으로 들어가렴”

 

 

 

 

형형색색의 섀도를 눈에 바르다 흘깃 딸을 바라보는 여자는 미소를 머금은체 딸아이를 이불안으로 뉘었다.

 

 

 

 

“엄마 내가 봤다니까요?”

 

 

 

 

“엄마 늦었어 네가 자야지 엄마가 돈을 벌어오지.”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짙은 향기에 딸은 기분 좋은 듯 웃으며 눈을 감는다.

 

 

 

 

딱딱한 분위기속 색깔은 짙은 회색으로 가득한 방 책상엔 이경욱 교수라고 쓰여진 이름표가 보인다. 교수의 얼굴은 피곤에 가득차 주름이 저번보다 더 늘어보이는 듯해 보인다.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최근에는 어땠나요?”

 

 

 

 

책상위로 손을 올려 두 손을 모았다.

 

 

 

 

“어제 벌레가 집에 들어온 것 같은데.. 아니 벌레가 되게 컸고 반짝거렸어요.”

 

 

 

 

“벌레..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시덥 잖은 얘기를 또 늘어 놓는구나 라는 표정으로 나의 눈을 마주치다말고 컴퓨터의 타자기를 두들기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나의 대화의 내용을 기록하거나 아니면 오늘의 뉴스따위를 검색하고 있겠지.

 

 

 

 

“벌레 때문에 통 잠을 못 잤어요. 밖으로 나갔는지, 집 어딘가를 헤집고 돌아다니는지, 그러다가 제가 잠에 들었는지, 뜬눈으로 잠을 잤는지 중간의 기억이 없어요. 눈을 떠보니 아침이고 나는 아주 피곤한 상태예요.”

 

 

 

 

“그 것 말고는 최근에 별 일 없었나요?... 지선씨?”

 

 

 

 

신경질이 치솟았다. 정신과 교수라는 작자가 환자가 벌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데 말을 또 돌리려고 한다.

 

 

 

 

“회사생활 지긋지긋한 거는 두말하면 잔소리고, 여기까지 오는 전철 안에서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신경질이나 죽을뻔했어요. 아니 그보다 교수님. 내가지금 벌래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온 게 웃겨요? 벌레 때문에 짜증나 죽겠다는데 왜 말을 돌려요? 짜증이 나서 잠을 못자겠어요 어느 날은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오고 요즘따라 계속 벌레들이 신경이 쓰이고 아니 한 두 번도 아니고 계속 보인다니까요? 어제뿐이 아니라구요!”

 

 

 

 

“... 벌레 얘기를 계속해볼까요?”

 

 

 

 

“됐어요. 잠을 못자겠으니까 수면제 좀 넣어주세요. 이 서류는 근처병원에서 먹던 약이에요 참고해주시구요”

 

 

 

 

아주 잠깐이지만 정적이 흘렀다. 이렇게 짜증을 내놓고선 아차 싶었다.

나도 회사에서 무례를 넘어선 부장에게 조금만 짜증 섞인 소리를 들으면 치가 떨리는데 하루에 몇십명이나 정신적 환자를 마주하는 이 사람은 어쩔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눈을 살폈다.

 

 

 

 

“....”

 

 

 

 

“죄송해요 요즘 일이 밀려서 회사에서도 치이고 숨쉴 시간도 없는데 간신히 얻어낸 휴가에 벌래 때문에 잠을 못자는게,, 아니 그래도 교수님이니까 오래 봐오셨으니까 이해하실꺼라 생각했어요”

 

 

 

 

“알겠어요 지선씨 일단 약을 처방해드릴테니 상황지켜보시고 약이 안맞다 싶으면 다시 찾아오세요. 약은 2주치 드릴께요”

 

 

 

 

딱딱한 표정에 한치 흐트럼없이 내 얘기를 듣던 의사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표정에 감정을 들어내지 않는다. 간단히 목인사를 하고선 진료실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간호사가 다른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내뒤 문사이 교수의 진료실로 들어간다.

 

 

 

 

어디서부터 나의 이 누를 수 없는 화가 생기기 시작한걸까. 한두번도 아니고 사실 요즘들어 집에서 혹은 회사의 내 자리에서 벌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날파리부터 시작해서 나방할 것도 없이 이런저런 벌래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니 머리를 쥐어뜯어버리고 싶다.

 

 

 

 

집으로 가는길에 대판 울어버렸다. 우울증이 좋아지기 시작하면 꼭 한번씩 나를 가만두질 못하는 듯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집에 오자마자 약봉지를 뜯어 신경 안정제와 수면제를 털어 넣었다.

 

 

 

 

절 때 깨지 않으리, 어제본 벌래는 창밖으로 나갔겠거니 스스로 되뇌이고 문을닫은체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먹는 수면제라 잠은 금방 쏟아졌다. 그러니까... 내일 출근이었나? 모래였나... ? 알람을 해놔야 .. 하나...

 

 

 

 

꽃밭이 펼쳐졌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로 발광하는 전경이었고 그 위로 물고기들이 날아다닌다.

 

 

 

 

나는 꽃밭에 들어 누워 기분좋게 불어오는 바람에 오랜만에 머릿속이 개운해짐을 느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꽃밭에 오로지 나홀로 만끽하고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밤하늘인가 눈물이 날정도로 좋은 기분에 기지개를 폈다.

 

 

 

 

몸을 일으켜 걸어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아니. 이대로 가만히 있자.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피곤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여긴 어딜까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내 볼을 스쳐지나가는 무언가. 반짝이는 크고 파르르 거리며 날개짓 하는 그것, 몸을 일으켜 내 무릎에 앉은 그것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벌래였다.

 

 

 

 

“씨발!”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잠에서 일어난 나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는 땀을 닦아내었다.

 

 

 

 

공기마저 조용한 방안은 어두워져 있었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보니 새벽2시를 바라고 있었다.

 

 

 

 

보통 약을 먹으면 꿈도 안꾸고 잠을 자야하는데 약효가 나랑 안맞는지, 저번에 먹었던 수면제와 같은것인데 기분나쁜 꿈을 꿔버렸다.

 

 

 

 

- 띠링

 

 

 

 

무섭도록 고요한 방안에 방울소리 비슷한게 들렸다.

 

 

 

 

깜짝놀라 입밖으로 소리가 새어나왔다.

 

 

 

 

방안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인 것이 분명해 핸드폰 불을 키고 전등 스위치를 찾으려고 몸을 일으켜 새웠다 그때였다.

 

 

 

 

“키지마”

 

 

 

 

소리가 나는쪽은 오른쪽 창가쪽이었다. 흠칫한 나를 진정시키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어 웬디”

 

 

 

 

“너 .. 너뭐야”

 

 

 

 

떨리는 목소리로 그것에 향해 대답했다. 목에 침이말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아주 작은 벌래... 아니 작은 사람? 말도안되는 상황에 아직 내가 꿈에서 깨지 않았나 싶어 혀를 깨물어보았다.

 

 

 

 

꿈이 아니다. 혀를 깨문 아픔때문인지 눈물이 맺힌 나는, 그것으로부터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싱긋 웃어보이며 미간을 올리더니 창문을 두드린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그 웃음에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더큰 벌래로 변해서 잡아먹힐것같은 어린아이같은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